가상칠언 (4) - 고독한 삶 <마태복음 27:45-54> / 강설 : 안성삼 목사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부를 때 언제나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부르짖음에서는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공의를 이루기 위하여 아들임에도 인류의 죄를 대신한 죄인으로 철저히 벌하시는 하나님을 찾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아야 할 인간들을 위하여 대신 죄를 지심으로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요, 인간의 가슴에는 벅찬 사랑이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깊어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3가지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세 가지 고난
2. 십자가 주위에 일어난 세 가지 현상
3. 십자가 때문에 드러난 세 가지 혜택
1.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세 가지 고난
1) 육체적 고난
그 고통을 온전히 감당해야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궁극적 목적인 인류 구속(救贖)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몸소 체험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영원한 구주요 중보자로서 성도들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또 위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정신적 고난
만일 주님께서 정신적 고난을 참으신 희생과 인내를 보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죄에서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정신적 고난을 이기지 못하셨더라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영적인 고난
우리는 주님께서 이때 받으신 영적 고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창세 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완전한 하나를 이루며 영교(靈交)해 오셨습니다. 아버지 안에 아들이, 그리고 아들 안에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 위에서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되셨고, 이 무서운 영적 고통을 아들은 어둠 가운데서 오직 홀로 감내해야만 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2. 십자가 주위에 일어난 세 가지 현상
1) 정오에 벌어진 흑암의 현상
2)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현상
3) 지축을 흔들고 살아난 현상
3. 십자가 때문에 드러난 세 가지 혜택
1) 버림받을 내가 버림받지 않게 되었다.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람들에게 뺨을 맞고, 채찍에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갖은 욕설을 듣고,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침묵하시는 하나님!! 아마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신가 보다, 하나님도 죽었나 보다.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듯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결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형벌 받을 내가 형벌 받지 않게 되었다.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벌하십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죄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가차없이 그를 버리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 죄를 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인들이 범한 죄를 위하여 영원한 형벌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3) 사랑받지 못할 내가 사랑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변개(變改)할 수 없는 법을 갖고 계십니다. 사람이 범죄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이 사망은 단순한 육체의 죽음이 아니고 영원한 사망을 의미합니다. 죄는 죄지은 사람들을 모든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분리시켜놓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죄의 삯을 지금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고 계시는 곳이고 동시에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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