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5) - 고통의 삶 <요한복음 19:28-30> / 강설 : 안성삼 목사



  농촌은 눈과 비가 너무 적게 와서 논과 밭이 가물 때 농부들은 목말라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막은 항상 목마릅니다. 어쩌다 만나는 오아시스는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입니다. 십자가 위의 주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1. 세상도 목마르다.

  2. 주님도 목마르다.

  3. 자신도 목마르다.


1. 세상도 목마르다.


  우리나라도 목마릅니다. 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두 메말라서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교계에도 지도자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와 같이 갈증이 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돈을 손에 넣기 위해서 안달하는 사람들, 쾌락을 찾아서 밤낮없이 헤매는 사람들, 명예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혈안이 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세상 영광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혹 조금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하고 기뻐하고 영원토록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술, 여자, 도박, 마약…)으로 채워보지만 그 어디에도, 그 무엇에도 참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굶주림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굶주림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남보다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사람들은 욕심으로 인해 심히 굶주려 있습니다. 이들은 다 육적인 사람입니다. 우리가 땅에서 살아오면서 무엇으로 우리의 공허를 메울 수가 있습니까? 돈을 벌어도, 지식을 가져도, 출세해도, 결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어보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텅 빈 영혼은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주님도 목마르다.


  자식이 밤이 늦도록 들어오지 않으면 부모는 갈증이 납니다. 애가 타고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자식이 들어오면 혼을 내줍니다. 그러면 자식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모르고 신경질을 부립니다. 자식이 늦게 들어온 것을 생각하면 자식에게도 갈증이 있었겠지만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에게는 더 큰 갈증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면 갈증이 나십니다. 애가 타고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다. 물론 인간이 목말라 하는 것을 모두 아시지만 그러면서도 죄 중에 있으면 마음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갈증입니다. 이 하나님의 몸부림과 애탐은 인간을 살리시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고 십자가에 달리시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기 때문에 생리적인 갈증을 느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갈증이 생리적인 갈증이셨다면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게 할 때 마셨으면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갈증이 생리적이고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에 대한 갈증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갈증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육적인 목마름도 있지만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목말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다면 우리도 사람들의 영혼을 보면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목말라 해야 할  것입니다.


3. 자신도 목마르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시 말해서 갈증이 났습니다. 그는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목마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바울이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갈증이 생겼습니다. 그의 갈증은 믿지 않는 형제들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그들을 예수 믿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큰 근심이 있고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의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중요함을 알았고, 혈통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면서도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형제들을 바라보면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명자의 갈증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진하게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의 신앙생활에는 누수현상이 심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구원받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셋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예배를 목말라 사모해야 합니다. 

  넷째로,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