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은 유독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에는 천사들이 애정을 가졌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천사들도 기뻐하는 것과 또 다른 감정들은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애정은 아닙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애정의 깊은 갈망 즉 깊이 사랑하고 싶은 숭고한 감정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이 고귀한 본성인 감정을 우리 안에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온 마음과 영혼과 뜻과 힘을 다하여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것과 애정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삶은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잘못된 동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원하는 영적 사랑의 정체성의 마음 자세를 가질 때, 자연스럽고 놀라운 순종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 진실로 바람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신부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피 흘려 싸우는 군사적인 패러다임으로 혹은 땀 흘리는 농부의 패러다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 대한 가장 중심 되는 진리 중의 하나는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신랑이시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파트너가 되기 위하여 선택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아들이 신부를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역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불리는 가장 위대한 사건의 절정을 향하여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구속의 목적이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의 보배로운 신부를 얻는 길을 예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우리 사이의 먼 간격을 없애기 위해 오셔서 그 풀기 어려운 사역을 이루신 것은 신랑이시며 왕이신 그의 가슴에 은혜로 구속받은 자들을 포옹하실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신랑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받는 신부의 입장에서 신앙생활 하지 않는다면 많은 축복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치료자시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우리의 연인이요, 우리를 애절한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근본적인 마음의 동기, 즉 우리를 원하시고 우리의 주의를 끌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알고 나면,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찬양과 기도가 달라질 것이며 진정 그를 사랑하는 깊은 애정으로 성장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가서가 절절하게 이해되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가셔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이유를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한번은 한 간호사가 자기가 돌보는 환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종업원이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나면, 사랑으로 그를 간호하기 때문에 환자의 체크리스트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간호사에게는 그 환자의 상태를 체크리스트를 통하여 보고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환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간호사의 인내와 헌신의 열정이 눈에 띄게 달랐습니다. 단순히 직업으로 환자를 간호할 때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훨씬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의무를 능가하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 모습을 통해 배웠습니다.
우리가 신부의 패러다임을 가지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더불어 거룩한 로맨스에 빠지게 됩니다. 바울은 복음과 함께 로맨스를 가진 사람이었음을 그의 서신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절절한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열어 복음이 가진 최상의 즐거움 즉 예수님과의 로맨스로 인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하고 의무적인 종교적 열심이 아닌 절절한 사랑에 뿌리를 둔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마르다’보다 ‘마리아’를 더 칭찬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기쁨의 영역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히 육체적인 기쁨과 정서적 기쁨 그리고 정신적 기쁨을 주셨지만, 가장 심오한 기쁨은 우리 본성 안에 있는 영적 기쁨입니다. 사단은 즐거움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즐거움을 악용하여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공허한 대용품을 제공합니다. 거짓된 즐거움과 복음의 로맨스와의 차이는 위조품과 진품이 항상 다른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단의 모조품을 거절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사랑스런 예수님과 더불어 진품 로맨스를 즐기는 수준에 올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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