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신학자가 ‘기독교는 열심의 종교’라고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뼈 속에 불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뜨거운 열심은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이요, 기독교의 빼놓을 수 없는 공통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열심을 빼버리면 기독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열심이 식어버리면 그 교회는 부흥도 식습니다. 건물이 아름다워도 그 교회는 죽어가게 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이 있어서 안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을 많이 하기로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꼽을 것입니다. 어느 날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비결은 특별히 없습니다. 단지 날마다 4시에 일어나 남들이 자는 시간에 두 시간씩 더 일을 한 것이지요. 습관이고 결심일 뿐입니다.”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조금 쉬고 싶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시간이 기다려 주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도, 봉사생활도,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학교생활도… 세월을 아껴서 열심히 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열심은 곧 부지런함으로 증명됩니다. 구세군 121년 역사상 개인으로 최고의 기부금을 낸 분이 있습니다. 1,120억 원을 기부한 맥도널드 창업주의 부인 ‘조안 크록’ 여사입니다. 그녀의 남편 크록은 원래 종이컵 행상을 하였습니다. 크록은 종이컵을 팔아 모은 돈으로 시카고에 ‘맥도널드’라는 가게를 차리고 ‘빵이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와 고기를 가장 부드럽게 익히는 법’을 열심히 연구하여 성공하였습니다. 맥도널드는 현재 자산 가치 3백30조 원으로 114개국에 24,500개의 매장을 두고 햄버거를 팔고 있는 대형체인이 되었습니다. 맥도널드 창업주 크록의 경영철학은 ‘열정’이라고 합니다. 크록은 직원들에게 “사람에게 재주나 기술이나 능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고 늘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고 싶은 열정은 성령과 함께 하는, 성령께서 주시는 뜨거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열심은 인간적인 세속적인 열심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나 변화되기 이전 사울이었을 때 그는 열심이었으나 인간적인 잘못된 열심이었습니다. 유대교를 섬기는 열심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쫓아가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을 죽이는 일에도 가담하였습니다. 열심은 열심인데 인간적이고, 잘못되고, 그릇된 열심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적인 잘못된 열심 2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좇지 아니한 열심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뒤로한 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때그때 자기감정대로만 하려고 하는 무식한 열심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의 의를 세우려는 열심입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자랑하기 위한 그릇된 열심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자기감정대로만, 자기를 드러내려고만 하는 이런 그릇된 열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하나님만 드러나는 성령이 주시는 겸손한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롬 10:2-3). 바울은 자기 스스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잘못된 인간적인 열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갖게 되었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열심 있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디도 2:14). 신앙생활을 보더라도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게으른 사람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의 수가 많거나 적거나 누가 열심을 가지고 봉사를 하는지 나타납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힘이 남거나 시간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들어도, 시간이 없어도 넉넉하지 못해도 성령이 주시는 열심이 있기에 묵묵히 봉사할 뿐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괴로우나 즐거우나, 기쁜 때나 슬픈 때나, 신이 날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변함없이 교회를 섬기고 묵묵히 봉사합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성령께서 주시는 열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 350년경 로마 교황을 지냈던 율리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고결한 신앙이 있어서 성자로 칭호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어떤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율리우스는 그 사람에게 자기의 열심이 많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열심을 좀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가슴에서 열심 덩어리를 꺼내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저울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열심 덩어리의 무게가 100근이라고 했습니다. 율리우스는 자기의 열심이 그렇게 많은 무게가 나가는 것을 보고 매우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그 열심 덩어리를 뜨거운 물속에 넣고 녹였습니다. 그리고 그 열심의 구성 성분을 밝혀주었습니다. 성분 내용은 야심이 30근, 자기자랑이 25근, 명예심이 40근, 하나님 사랑이 5근, 합계 100근 이였습니다. 열심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을 사랑해서 내었던 열심은 고작 5근밖에 안 되는 것을 본 율리우스는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하나님에 대해 열심하는 자라”(행전 22:3)고 고백합니다. 열심이란 말은 헬라어 ‘en’과 ‘theus’란 말이 합성어가 된 것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를 위한 열심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열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