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7월 날씨에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50년 전통의 유서 깊은 한 여관에 머물며 저희 부부는 딸아이의 혼사(婚事)를 도우면서, 사돈어른이 모아 다준 칼빈 관련 자료들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약 500여 년 전 종교개혁자 존 칼빈이 이곳 제네바의 한 여관에서 하루를 머물다가 세상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칼빈은 종교개혁적 진리에 대해 큰 확신을 갖고 있었고 종교개혁 시기의 여성들 가운데 자애롭고 영성이 풍부한 성품을 지녔으며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알려진 북부 이탈리아 <페라라>의 공작부인 <르네 드 에스테>의 초대 손님 중 하나로 6주간 머물렀다가 박해를 피해 라인 강변의 도시 <바젤>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왕의 칙령으로 모든 프랑스 사람에게 6개월 이내에 개신교 신앙을 포기한다면 사면한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칼빈은 그 시기를 이용하고자 마지막으로 프랑스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는 우선 친구들을 방문하기 위해 <파리>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친구가 이미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고향인 <노용>에서 그는 자신의 남은 재산을 정리하고 영구히 고향을 떠날 것을 결심했고 그의 누이와 동생은 스트라스부르그로 떠났습니다. 그도 거기나 혹은 바젤에서 작가로 머물며 살고자 했습니다.
그는 북동부 국경이 전쟁의 소요와 혼란 때문에 막혀 있었으므로, 스트라스부르그로 가기 위해 그는 제네바를 통하는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1536년7월 어느 날 저녁,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낯선 제네바에 도착하여 여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일찍 다시 길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바로 그 밤에 칼빈의 생애에 극적인 전환이 왔습니다. 그것은 역사가에게는 역사적 의미를 담은 전환이었지만, 칼빈 자신에게는 그의 삶 속으로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하나님이 간섭하신 사건이었습니다. 그 일을 새롭게 수행하도록 칼빈에게 강력히 권유한 인물은 같은 프랑스 출신인 <기욤 파렐>이었습니다. 파렐은 칼빈이 이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곧바로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칼빈의 계획, 의도,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파렐은 아무 준비도 없이 칼빈을 스트라스부르그로 가지 못하게 했으며,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의 일을 수행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칼빈 자신은 다만 제네바를 통해 이웃 도시 스트라스부르그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제네바에 더는 머물지 못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파렐은 제네바의 상황을 칼빈에게 설명했고 개신교 공동체 설립의 필요성을 그에게 역설했습니다. <기독교 강요>의 저자는 실천적인 일에는 별 재주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학문적 과제 때문에 제네바에서 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칼빈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펜을 들고 섬기는 능력만을 지녔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파렐은 같은 프랑스 사람인 칼빈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청을 거부하고 학문의 길만 고집하려 한다면, 하나님이 칼빈에게 저주를 내릴 것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같은 저주 섞인 말 속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파렐의 말에 복종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제네바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칼빈 스스로 제네바의 한 여관에서 일어났던 이 기묘한 사건에 대해 시편주석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파렐은 내가 개인적 학업에 열중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나를 구속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간청이 내게 별로 효력이 없음을 알고 한탄스러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즉 내가 이 어려운 상황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이 내가 애쓰고 노력하고자 하는 학문적 작업에 저주를 내리실 거라는 말이다. 그 말이 나를 당황스럽고 놀라게 했다. 나는 마침내 여행을 중단해야 했다. 나는 두려움과 전율로 온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특정한 직분이나 확고한 자리를 맡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편 서문, CR 59, 23-25)” “하나님이 마치 하늘에서 그분의 거대한 손을 내게 뻗치시기라도 하듯이…” 칼빈은 자신의 생애를 사역의 길로 이끄시는 불가항력의 힘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전체와 생애를 그 힘에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칼빈을 통해 그분의 뜻을 관철하시고자 함을 분명히 인식했기에, 그는 신학적인 계명과 자신의 삶의 실재성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머물러 있음과 자신이 더는 그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칼빈은 자신의 희망사항과 좋아하던 경향과는 달리 새롭게 주어진 일을 수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위임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나의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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