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를 축복할 때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남에게 뒤처지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1등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대부분은 사회에서 1등 할 수가 없습니다. 1등은 단 한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삶의 기준을 세상의 기준처럼 세워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1등 인생보다는 탁월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탁월한 인생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공부 1등하고, 돈 많이 벌고, 사장소리 듣고, 똑똑하고, 머리 잘 돌아가고, 남보다 앞서가는 지혜, 지식을 가진 사람을 탁월한 인생으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탁월한 인생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보듯이 전혀 다릅니다. 부자는 엄청난 출세를 하고 사회적으로 탁월하게 인정받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무가치한 인생으로 결론지으셨습니다. 반대로 거지 나사로는 사회적으로는 무가치한 존재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탁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증거는 죽어서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탁월하다고 여기는 것이 영원의 관점에서는 자칫 허무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중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멕시코 만에서 물고기 잡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테마로 잡고 있습니다. 그는 84일간 매일 고기 잡으러 나갔지만 허탕을 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85일째 되는 날 큰 고기가 낚시에 걸렸습니다. ‘멀린’이란 이 고기는 매우 커서 배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습니다. 사흘 동안 노인이 이 고기에 끌려다니는데,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동안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합니다. 결국, 노인은 마침내 작살을 쏘아 그 큰 고기를 잡습니다. 그리고 배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만 상어떼들이 달려들어 그 힘들게 잡은 물고기를 다 뜯어 먹습니다. 노인이 대항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배가 항구에 닿았을 때는 그 큰 고기는 하얀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노인은 돛을 감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집니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에 있어서 잠시 누리는 영광과 성공이 주는 기쁨은 한순간이요, 사실은 허상에 불과함을 교훈해 줍니다. 결국, 인생의 수고는 큰 물고기가 뼈다귀만 남은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시대의 위대한 왕인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인생이 허무하다고 결론짓습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절) 세상의 탁월한 어떤 것도 허무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탁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탁월하게 여기시는 것에다 우리 인생을 걸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사상에 의하면 성도들이 이 땅에서 행한 일은 영적으로 볼 때 하늘나라에서는 건축자재로 변하여 쌓이고 그것이 하늘나라 내 집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재료를 남기는 삶을 살아서, 하늘나라에 금, 은, 보석으로 짓는 내 집을 짓고,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은 재료를 남기는 삶을 살아서 하늘나라에 나무, 풀, 짚으로 내 집을 짓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우리 눈에는 쉽지 않기에 반드시 하나님이 공력을 드러내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12 에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이것을 ‘건설구원’이라고 귀에 쟁쟁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천국에 가보기 전까지는 이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이 탁월하게 여기는 삶을 산 사람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탁월한 상을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주님께 크게 책망을 받고 상도 없을 것입니다.


  전혀 남긴 것이 없는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지 책망받을지를 늘 계산하며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늘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탁월한 삶을 살아서, 저 하늘나라에서 위대한 상을 받는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삶은 나중에 천국에서 내가 어떤 축복을 누릴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그러기에 이 땅의 탁월함보다 하늘의 탁월함을 구하십시오. 이 땅의 사라질 영광보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구하십시오. 이런 자세가 굉장한 부담이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 삶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 삶의 모든 여정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이 되는 이런 소득의 특권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일등인생을 못살 바에야 하늘나라의 탁월한 인생으로 사는 비법을 터득하는 것이 훨씬 후회가 없는 삶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