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굉장하거나 위대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명감을 갖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미 해군 장성이 있었습니다. (William Healthy)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들의 과거 이력을 보면 대부분 무식하고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고, 창녀고, 세리고, 병든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교회와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위대한 부르심 앞에 순종하고 따라가기만 하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것이고 놀라운 주님의 성업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마다 ‘자격 미달’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성품 면에서나 지성 면에서나 영성 면에서, 사역자로서의 자질이 늘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저에게 사역의 기회를 주심이 늘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매일의 감격이고 감사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어렴풋하게 해답처럼 여겨지는 것은 성경을 읽을 때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야곱의 기사나 다윗의 이야기, 그리고 베드로의 생애는 저에게 크게 힘을 주는 부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위대함에서 보다는 그들의 실수 이후에 전개되는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은혜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요즈음 베드로의 기사를 보면서 특별히 은혜 받는 부분은 한 번 부름 받은 베드로를 끝까지 챙기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직접 찾아가셔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고 초청하셨던 주님의 부름에 배도 가족도 버리고 즉시 따라갔던 베드로(마태 4장 / 마가 1장), 그렇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도 전에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갔던 베드로를 또 만나 주시고 “이제 이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고 도전하신 주님의 집착을(?) 보았습니다. (누가 5장) 더욱이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는 염치없어 또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 가버렸던 그에게 부활 후에 또다시 찾아오셔서 “내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고 격려하셨던 주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어찌 그리 감격스러운지!
당시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유망한 직업 중의 하나가 어업이었다고 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들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중요한 식량으로 공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먼 지역에 수출까지 하는 무역 품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의 어부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다가 떠났을 때, 주님이 어디로 찾아오시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입니다. 예수 없이 장사를 잘했습니까? 하나님 없이도 여러분의 사는 분야에서 성공하셨습니까?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았는데도 공부를 잘했습니까? 내가 제일 자신 있어 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곳으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다시 도전하십니다. 도전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의 삶의 주인이냐는 것입니다. 다른 부수적인 것에만 나를 인정하고 사느냐? 아니면 네가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유능하게 생각하는 분야에서도 나를 인정하느냐? 너는 나에게 순종할 것이냐? 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한 것은 시몬 베드로의 신앙 고백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시몬의 죄 고백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성한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부도덕성, 무지, 부정함을 자백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시몬이 예수님의 신적 지고성(至高性)을 알아보지 못하고 훌륭한 한 인물로만 대한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로부터 나를 떠나달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바로 떠나십니까? 그렇지 않지요. 예수님은 다 아시고 여기까지 오셨으니까요. 저는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들하고는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자기가 믿음이 떨어져서 하나님을 떠나보고 시궁창 생활도 해보고 극한 상황에서 쥐엄 열매도 먹어본 사람, 아버지 품에 가서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 이런 경험이 있을 때 그런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다가 세상의 시궁창에 빠져보기도 했다가 그때야,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하는 사람이 진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러한 과정을 다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계속해서 올라가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더러는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도무지 기본 신앙조차도 지켜나갈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약합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많은 배 가운데서도 하필이면 베드로의 배를 선택하여 올라타시고 호숫가의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실 만큼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의도성 강한 마음이 오늘도 나의 마음에 저려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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