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는 소탕작전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지금 치열한 영적 전투 현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런 것은 사탄과 그의 심복들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이미 패배했으며,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남은 잔당들을 소탕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적극적인 활동을 두려워하여 피해야 할 존재는 오히려 어둠의 세력입니다. 영적 전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에베소서 6장 18절에는 우리가 어떤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지 설명해 줍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기도를 통해 효과적인 전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기도’라는 요소는 전신갑주에는 속하지 않지만 그 전신갑주가 더욱 견고해져 영적 전투에서 더욱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기능을 담당하므로 바울 사도는 이를 따로 구분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영적 전투에서 방어용으로도 공격용으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무기입니다. 예수님에게 기도가 최우선이었듯이 우리에게도 그러해야 합니다. ‘기도’(프로슈케)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강조하는 단어이고, ‘간구’(데에시스)는 하나님의 백성이 전능하신 그분께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간청하는 기도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 사탄을 떨게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여우가 토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여우가 토끼를 놓친 이유는 이렇습니다. '여우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하여 뛰었고, 토끼는 살기 위하여 뛰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똑같이 뛰어도 뛰는 목적에 의하여 결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여우처럼 한 끼 식사를 위한 목적으로 믿는 사람과 토끼처럼 생사를 걸고 믿는 사람의 결과도 목적과 방법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액세서리(accessory)가 아닙니다. 액세서리는 형편과 상황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될 뿐 아니라 기왕 해야 할 필연적이면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갈등과 목마름이 있으십니까? 토끼와 같이 생존을 위한 거룩한 몸부림의 결핍인지 모릅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은 없고 답답하기만 합니까? 살기 위하여 간절하고도 처절한 흔적들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죽고 사는 문제이지 자기수양이나, 고행 또는 소원성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기도, 불타는 소원, 애절한 매어 달림…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하고 하늘을 여는 첩경입니다. 호흡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듯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을 하다 말다 할 수 없듯 기도 역시 그렇습니다. 상황과 형편 따라 호흡이 달라질 수 없듯이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이 곧 생존이듯 기도 역시 생존의 조건이어야 합니다. 기도가 생활이 되고 생활이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기도는 '하는 것'보다 '되는 기도'가 더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기도를 명상이나 자기성찰 혹은 독백이나 자기 하소연 정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응답받는 기도, 영계가 열리는 기도는 처절한 영적 전투요 자기와의 씨름이며 거룩한 노동입니다.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반죽 될 때 그곳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크고 비밀스러운 일들을 알게 하시며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걸작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우처럼 기도하지 마십시오. 토기처럼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생각하고 죽을힘을 다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부르짖고 매어 달리십시오. 우리 기도의 목적은 한 끼의 식사 정도의 소원성취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에 있어야 합니다. 살기 위하여 먹어야지, 먹기 위하여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소원성취보다 생존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고 풍성하지 못하며 늘 무기력하고 더 나아가 성숙과 발전이 없으며 궁색하고 찌들려 사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한 목표와 꿈을 설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죽기 살기로 뛰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며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식으로 생각하기에 쉽게 지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마귀 소탕을 위해 주님이 허락하신 주력 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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